신문고를 두드리세요

신문고(申聞鼓)라는 것이 있다. ‘조선 시대,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임금에게 직접 호소하고자 할 때 치도록 대궐의 문루에 달아 두었던 북’이라고 사전은 말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조선조 셋째 왕 태종이 백성 중에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직접 호소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대궐 밖 문루에 커다란 북을 설치해 북소리가 들리면 사연을 듣고, 왕명에 의하여 해결해 주는 제도였다.

오늘날도 이러한 제도를 본 따서 ‘청와대 신문고’, ‘민원 신문고’, ‘인터넷 신문고’, ‘국민권익위원회’, ‘고충처리전담’ 등이 운영되고 있다. 그 취지를 “행정기관의 위법·부당하거나 소극적인 처분 및 불합리한 행정제도로 인한 권리·이익의 침해, 불편·불만사항이 있을 때 속 시원히 털어 놓을 수 있는 곳,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 등의 개선을 건의할 수 있는 곳, 행정기관의 각종 정책이나 의사결정과정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곳, 신속한 처리를 통한 고층민원 만족도 증대, 적극적인 국민의견 수렴으로 창의행정실현, 국민의 참신하고 유용한 의견이 정책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서비스구현, 시민클럽을 통해 하나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제공 하는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급한 사정, 불합리한 일등을 이러한 제도를 통해 호소한다.

그런가하면 찾아가는 지역민의 고충처리를 위한 이동 신문고도 있다. 지난 2003년 10월 충북 청주시에서 시작해 한 달에 2~3회 조사관들이 전국을 돌며 지역 주민들의 고충을 해결해왔던 이동 신문고가 200회를 넘겼다고 한다.

세상에서만 신문고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도 신문고를 운영하고 계신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은 신문고의 원조이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 불행을 다 아시고 그 해결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상의 신문고를 두드리듯 하늘에 소망을 둔 성도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나님의 신문고를 두드려야만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여는 신문고는 기도다. 우리가 올바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문고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억울한 일, 고충, 고민, 불합리한 일등을 처리하여 주신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이를 약속해 주셨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길,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2-13)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믿고 기도하면 그것이 신문고를 울리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신문고는 사실상 천민, 노예, 상민 등 정말 억울한 사람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신문고는 오히려 권세자의 전유물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의 신문고를 울리면 반드시 응답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문고는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다. 반드시 북이 울리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시고 낮은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고, 인생의 불행을 외면치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신다.

하나님이 들으시도록 북을 두드리자! 급한 사정이 있는가? 억울한 일이 있는가? 불행한 일을 당했는가? 둥둥둥 신문고를 울리자.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인생들의 사정과 비밀과 마음의 중심을 다 아신다. 두려워할 것은 두려워하고, 위로받을 것은 위로받고, 응답받을 것은 응답받도록 하나님의 신문고를 울리자. 나의 아픔과 고통과 불행만이 아니고, 더 많은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위해서도 북을 울리자. 넓게 넓게, 높이 높이 울리도록 북을 울리자.

그리고 신앙으로 볼 때 진리에 맞지 않고, 신앙의 불합리한일들도 많이 있다. 이러한 일들도 우리는 하나님께 북을 두드려, 고쳐나가야만 한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하셨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닌 것은 고쳐야 한다. 온 세계가 진리로 충만해야 한다.

어떤 교황은 선한 양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자비만으로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양심으로 구원을 받는가?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는가? 신을 믿지 않고 선행만 해도 구원을 받는다면 기독교의 존재이유가 무엇인가? 이 죄를 용서받지 않고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마지막 때가 될수록 이단적인 사상과 잘못된 신앙이 판을 친다. 여기 저기 ‘내가 그리스도’라고 외치는 자가 많다. 가짜진리가 판을 치는 마지막 때이다. 진리의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진리의 신문고를 많이 울려야 한다. 온 세계가 진리로 충만하도록 둥둥둥 신문고를 울려야만 한다. 세례 요한의 때처럼, 잘못된 사상의 크고 작은 산은 낮아지게 하고, 잘못된 사상의 모든 골짜기를 메워지게 하고, 굽은 것은 곧아지게 하여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 신문고의 울림들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기도한다.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