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찾느냐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세상의 가치관에 휩쓸려 중심을 잃고 살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그리워하며 살기 보다는, 내 몸과 내 가정과 내 소유만 잘되도록 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현세적 이익에 매달리며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주님께 필요한 무엇을 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찾는 목적은 눈앞에 보이는 선물이 아니라, 그 선물을 주시는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사건 현장에서도, 예수님의 시신을 매장할 때도 함께 했던 여인 막달라 마리아가 빈 무덤 앞에서 절망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예수님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찾아간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으니 절망해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흘리는 눈물에 그녀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눈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얘기합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 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갖는 아픔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요20:15)하고 물으십니다.

사복음서에서 보면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오지만 하나같이 무엇을 얻기 위해서 옵니다. 정치적 메시아를 찾아서 오고,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서 오고, 병 낫기 위해서 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온 것은 무엇을 찾아 얻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이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는 무엇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찾아 온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글입니다.

『어느 날 저녁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린 아들이 부엌으로 와서 엄마에게 자기가 쓴 글을 내밀었다. 아내는 앞치마에 손을 닦은 다음에 그것을 읽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잔디 깎은 값 5달러, 이번 주에 내 방 청소한 값 1달러, 가게에 엄마 심부름 다녀온 값 50센트, 엄마가 시장 간 사이에 동생 봐준 값 25센트, 쓰레기 내다 버린 값 1달러, 숙제를 잘한 값 5달러, 마당을 청소하고 빗자루질을 한 값 2달러, 전부 합쳐서 14달러 75센트.’ 아내는 기대에 차서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아내는 연필을 가져와 아들이 쓴 종이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너를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밤을 새워가며 간호하고 널 위해 기도한 값 무료, 너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힘들어 하고 눈물을 흘린 값 전부 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사랑은 무료, 너 때문에 불안으로 지샌 수많은 밤과 너에 대해 끝없이 염려한 시간도 모두 무료, 장난감, 음식, 옷과 심지어 네 코를 풀어준 것까지도 전부 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진정한 사랑은 무료.’ 아들은 엄마가 쓴 글을 다 읽고 나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사랑해요!” 그러더니 아들은 연필을 들어 큰 글씨로 이렇게 썼다. 전부 다 지불되었음!』

거룩한 보혈의 피로 죄인 괴수인 우리가 의인이 되는 놀라운 은혜와 그 교환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영벌당할 우리가 영생을 얻는 놀라운 은총과 그 교환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 그 사랑과 자비의 예수님을 만나면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욕심만을 추구하며 살던 삶이 부끄러워집니다. 눈앞에 집착을 버리고 생명의 원천인 예수님을 찾아 혼을 불태웁니다.

“주여, 아주 나라는 관념을 없이하여 주소서. 그리고 나의 속에 오로지 주님만이 살아계시옵소서. 주가 움직이어 내가 움직이게 하옵소서.”

이용도 목사님의 고백처럼 주님이 주시는 선물을 원하기 보다는 오로지 주님만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자신의 전부를 걸고 얼마나 철저하고 간절하게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며 갈망했는가를 돌이켜 볼 때 한없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져 빈 무덤가에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은 “누구를 찾느냐?”는 질문을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한테서 어떤 질문을 받을까요? 우리가 찾는 대상에 따라서 질문도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한테서 무엇을 찾고 있으면 무엇을 찾고 있느냐란 질문을 받을 것이요, 우리가 주님 자신을 찾고 있으면 누구를 찾느냐고 질문 받을 것입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요20:15). 우리 모두 주님께 ‘누구를 찾느냐?’는 질문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귓가에 또다시 이용도 목사님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라. 아무래도 무엇에든지 미쳐 살아야 할 바에는 하나님에게 미쳐 살아라.”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