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나는 나의 형제여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기도할 시간을 가지며,

웃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것은 영혼의 음악입니다.

- 마더 테레사

생각할 시간

가을이 깊어가던 10월의 중순, 청소년 영성학교 교사들이 캄보디아로 단기선교 체험을 가게 되었다. 오래 기도하며 계획하던 시간이었기에 준비기도도 많이 했기에 기대 또한 컸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며 떠나는 길엔 설렘들이 저마다 숨어 있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부르심이 우리들의 심장에 흰 구름을 띄워 주실 것을 믿고 있었다.

비행기가 출발하고 우리들은 모두 저마다의 침묵에 들어갔다. 가만히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했으므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비행은 주님의 마음을 알아, 선한 뜻을 이루어 드리고 싶은 열망이 날아오르는 순간이었다.

지금껏 청소년 영성학교 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함께하면서 수년을 보내왔지만, 모두들 조금 지친 상태였고, 목표가 희미해질 것만 같아 마음을 새롭게 디딜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매주 토요일, 늦잠을 자고 싶거나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아침부터 시작하는 영성학교는 하나님만 보고 진행하는 경건모임이다.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눈에 띄는 큰 열매도 없다.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악한 세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영혼에 맑은 울림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목표삼아 살아갈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전부다. 소수라도 괜찮고, 그럴듯한 규모도 필요치 않다. 예수님이 언제나 삶의 중심이 되고,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자랄 청소년들이 되길 바라고 있다. 무료한 일상처럼 재미없고 지루한 영적 수업들이 주님 때문에 재밌어질 시간들을 꿈꾸고 있다. 제도권 교육과 다른 영적인 꿈을 꾸며 영혼을 깨우는 수업이 정착되어, 어두운 이 땅을 빛나게 할 대안학교의 꿈을 꾸며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에 주인이신 주님의 생각이 더 간절하게 듣고 싶었다.


기도할 시간
마더 테레사의 비즈니스 카드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한다. “침묵의 열매는 기도이며, 기도의 열매는 믿음이며, 믿음의 열매는 사랑이며, 사랑의 열매는 봉사이며, 봉사의 열매는 평화이다.” 평생 동안 하루 24시간 중 18시간을 봉사하는 일로 사랑을 실천했던 그녀가 가진 것은 무명으로 짠 단 두벌 의복과 샌들 하나뿐이었다. 마더 테레사는 단기로 방문 했던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 인도를 잊지 못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가득 부어져야 할 그 나라를 보고 결국,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만다. 인도인들의 위로자가 되고 친구가 되기 위해 ‘길 위의 길’로 또 다른 부르심을 받아들인다.

마더테레사가 캄보디아를 방문했다면 어땠을까. 인도만큼이나 정말 가난한 나라. 어디를 가도 가난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이들. 마주치면 웃음부터 웃는 순박한 사람들. 가난이 부끄럽지 않아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 사람들. 노래가 좋고 악기 연주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단순한 사람들. 적어도 그들이 보기엔 우월한 한국 사람들, 돈 잘 버는 나라인 한국에 가는 소망을 품은 사람들.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절망도 없는 나라. 비참하지만 순수한 사람들. 누구나 자기생활에 만족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는 이들. 그들의 영혼이 안타까워 기도가 절로 나오는 나라. 맑음에 거룩한 영성을 입혀서 새로운 가치관을 품는 이들로 자라게 하고 싶은 열망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캄보디아에 선교사로 가 계신 목사님 내외분과 전도사님을 보면서 마음 한켠의 짠한 마음이 내내 떠나질 않았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나는, 일 년 내내 여름인 나라. 한국과 두 시간 정도의 시차가 있는 그곳에서 시계를 볼 때면, 지금 한국은 몇시네, 라고 하신다던 목사님. 이맘때 쯤 펼쳐질 한국의 가을 풍경이 어떤 날은 그립다고 하시던 목사님. 일생 목회자로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살아오시던 어느 날, 선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에 기꺼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종하여 낯선 땅으로 오신 그 걸음을 주님은 매우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주일에 캄보디아어로 능숙하게 설교를 하시던 모습을 뵈니 얼마나 노력을 하셨을까 싶어 감동이 일었다.

캄보디아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한국어를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위해 밥을 하고, 마음을 살피며 동분서주 하시던 사모님. 여성이기에 해야 할, 섬세함이 필요하고 분주함이 따르는 일들로 발걸음은 언제나 바쁘셨다. 영어로 캄보디아어로 아이들과 대화하시고 찬양하시고 양육하시면서 은혜가 넘치시는 모습을 뵈니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훌륭한 몽당연필임에 손색이 없으셨다. 한국에서 연단하신 후, 캄보디아로 보내셔서 다시 단련하시는 주님 앞에서, 이젠 세상의 낙은 없고 오직 주님이 어서 오셨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이 되었다고 하시니 그보다 복된 마음이 어디 있을까 싶다.

또 한분, 2년여 동안 캄보디아를 섬기던 박희서 선교사님이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태국으로 또 다른 길을 떠났다. 여행 가방 두 개가 전 소유인 소박한 삶. 여린 듯 보이는 뒤로 강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였고 이제는 선교사로 걸어가는 길이 익숙한 듯 편안해 보였다. 또 다른 선교지인 태국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는 주님만 아신다. 14시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떠나는 길, 잘 가시란 인사를 하고 돌아오면서 배웅하던 모두는 차오르는 감동과 애잔함으로 잠시 마음이 쓸쓸하고 아팠다. 홀로 떠나는 뒷모습이 쓸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어디든 가야하는 우리의 삶이 느껴져서고 그 걸음이 복됨을 알기 때문이었다. 너의 가는 길에 주의 평강 있으라, 평강의 왕 함께 하시니.

선교사님들은 끝이 없이 주기만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사역자들은 힘이 소진된다. 그 마음에 주님의 위로는 단비가 되고 동역자들의 기도와 후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큰 힘으로 선교지를 세우는 일이 된다. 이모저모로 단련하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케 하시는 일에 우리 모두는 하나다. 복음이 증거 되는 곳에 우리의 마음과 헌신이 들어가도록 더 관심과 사랑을 보내야 한다. 나도 언젠가는 주님 손에 붙들려 어디로 어떻게 가서 사용될지 아무도 모른다.

웃는 시간

중국 내륙의 복음 전도자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점점 중국인들을 닮아갔다.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데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중국인들의 옷을 입고 중국인들처럼 변발을 했다. 그런 그를 영국에서는 못마땅해 하기 시작했다. 야만인들의 방식을 따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의 영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런 것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테일러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구해서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는 사람이었다. 또한 자신의 선교단체만이 아니라 다른 선교단체들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노력하는 것이 그의 사역의 원칙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중국 땅의 모든 곳을 구석구석 찾아나서며 중국의 영혼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테일러는 1905년 6월 3일 그가 마지막으로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중국 사람들의 땅에 뼈를 묻었다.

마더 테레사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연필들이다. 우리가 아무리 불완전한 도구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신다. 하나님의 몽당연필, 그것이 바로 나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내가 처한 환경과 이웃한 사람들이 있어 그것이 나를 엄습하여 때론 괴롭게 하고, 낙망을 주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해하면 넘어서지 못할 것이 없다. 결국은 주님이 답이 된다.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언제나 네, 하고 답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길을 떠나야 하는 나그네 인생들이다. 어디에도 깊은 마음 두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여 살아야 한다. 길 떠나는 나의 형제들이 많아질수록 하나님 나라는 더 확장되고 부흥한다. 잊지 말라. 너와 내가 길 떠나야 하는 형제들임을.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