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스처럼 사브라가 되라

지난 11월 7일은 아주 의미 있고 뜻 깊은 거룩한 예식이 있던 날이다. 개신교 공동체 안에서 흔치 않은 일인데, 일생을 주님께 동정을 바치고 살기로 결단하는 7명의 형제가 남자동정수도회에 입회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오랜 침묵을 깨고 입회한 그들은 “황무지에 7송이의 꽃이 피었다”며 감격해 하시던 어느 수도사님의 말씀처럼, 그들은 꽃이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요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

가지런히 무릎 꿇은 7명의 형제의 눈에 맑은 눈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히었다. 차가운 성전바닥에 엎드린 그들 위로 하얀 천이 덮여졌고, 고요한 침묵 가운데 강대상에 계신 목사님들과 예식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도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세상과 자신에 대하여 죽겠노라는 그들의 고백과 결단이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선율로 다가온다. 수도생활의 첫걸음을 시작하는 7명 형제들의 청빈과 순결과 순종의 서약 앞에 또다시 뭉클한 감동이 일어난다.

한 명 한 명의 사진과 함께 그들의 기도문이 영상으로 비춰진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십자가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7형제의 모습에서 저 하늘에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실 하나님 아버지와 영적 아버지시며 수도회의 창립자이신 공용복 선생님의 환한 미소가 그려진다. 갓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마냥 환한 얼굴에 미소를 연신 짓고 계신 성결수도회 회원들의 기쁨의 환희가 청중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스란히 옮겨진다. 하늘에서는 팡파르가 울리고 땅에서는 기쁨의 잔치가 열린 듯하다.

무릎 꿇은 형제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목사님들께서 한 분씩 기도를 하신다. 한 형제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시는 한 목사님의 음성이 떨리며 눈물이 함께 배어나온다. 그동안 이곳까지 오게 하시기 위하여 형제에게 많은 아픔과 고통과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게 하셨다는 애절한 기도가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나의 눈에도 가슴에도 눈물이 고인다.

이후 조용히 한 명 한 명씩 목사님들 앞을 지나간다. 예식을 집전하는 목사님들의 진심어린 격려와 포옹에 어깨를 들썩이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형제들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한없는 긍휼하심이 느껴진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녀에게 희망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들은 자녀를 사브라(Sabra)라고 부른다.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아빠처럼 사브라가 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들려준다. 사브라는 선인장 꽃의 열매이다. 겉에는 가시가 많지만, 속은 붉은 색으로 단맛이 난다. 사막의 악조건을 견디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사브라처럼, 역경을 이기고 강인하게 살아남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선인장(仙人掌)은 한자어인데, 산 속에서 도를 닦는 신선의 손바닥이라는 뜻이다. 백년초(百年草)라고 불리기도 하는 선인장은 온 몸을 가시로 감싸고 있는 겉모습과는 달리 꽃말은 사랑, 열정, 불타는 마음이다. 선인장이 건조한 환경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잎이 가시형태이기 때문이다. 선인장 가시는 사막에서 증산을 막기 위해 잎이 퇴화되어 생긴 것으로 수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동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실내공기 정화에도 탁월하고 다량의 수분이 유해전자파를 차단해준다고 하여 컴퓨터 옆에 놓아두기도 하는 식물이다.

진짜 말라 죽을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낄 때 마지막 안간힘으로 꽃을 피우고, 그렇게 자기 존재감도 알리고 끝까지 살아남는 선인장. 그 끈질긴 생명력과 인내력이 참 부럽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광야 길에서 쉽게 포기하고 곧잘 주저앉는 나의 모습을 왠지 꾸짖는 듯 하여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식물조차도 이렇게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끝까지 싸워 고통 속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너무나 약하기만 하다.

“사막에서도 나를 살게 하셨습니다. 쓰디쓴 목마름도 필요한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내 푸른 살을 고통의 가시들로 축복하신 당신. 피 묻은 인고의 세월 견딜힘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그 어느날. 가장 긴 가시 끝에 가장 화려한 꽃 한 송이 피워 물게 하셨습니다.” 이해인 수녀님께서 쓰신 “선인장”이라는 기도시가 가슴 깊이 박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아무도 찾지 않은 황무지에 핀 조그만 풀꽃처럼, 한 마디 바람도 없이 거친 들을 수놓으려 하는 저들의 첫 걸음. 누구도 알지 못할 황무지에 핀 조그만 풀꽃처럼, 오직 주님을 찬미하며 아름다움을 수놓으려 하는 이들의 첫 걸음이 그 어떤 걸음보다도 아름답고 고귀함을 다시 느낀다.

창립자의 정신을 본받아 익은 열매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서약문의 고백 가운데 유대인들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하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아, 40년의 기나긴 가시밭길을 거쳐 나의 참 아들이 되었던 너희의 영적 아빠스처럼 거친 사막을 거쳐 사브라가 되라.”

순결한 꽃을 피우기 위해 거친 사막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그 길이 비록 쓰디쓴 목마름이 이어지는 길이지라도 주님의 맑은 물로 해갈할 수 있는 영혼의 오아시스가 있음을 알기에 그 은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몸서리치는 외로움과 고독과 쓰라림과 고통의 가시들을 온 몸에 새기며, 거칠고 사나운 광야 길을 걸어가야겠기에. 건조한 모래바람을 맞으며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하며 주님께로 가야하는 이 길이기에. 사막의 악조건 속에서도 역경을 이기며 강인하게 살아남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선인장처럼, 끝까지 사나운 야수들을(마귀)을 물리치고 인내하며 나가야 한다. 정욕의 유해전자파들을 성령의 맑은 물로 철저히 차단하며 영혼을 정화시켜야 한다. 진짜 말라 죽을 것 같은 절망 끝에서도 결포 포기하지 않고 쉼 없이 달려가야 한다.

믿음이란 결국 긴 기다림이란 것을. 메마르고 거친 사막을 지나 덕을 닦으며 인내의 말씀을 지켜 나가는 것임을.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최후까지 희망을 움켜쥐는 힘에 다름 아님을, 선인장은 비로소 말해 주는 듯하다.

어느 한철 찬란히 피어나는 선인장 꽃은, 모든 잎을 가시로 바꾸면서까지 끝끝내 지켜온 선인장의 꿈이듯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며 피 맺힌 가시들을 고스란히 품고 인내하여 온전한 순결의 꽃을 피우길 꿈꾸어 본다. 열사의 폭풍도, 지루한 건기도 선인장에겐 더 이상 절망이 될 수 없다. 이 광야 길에 고통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다. ‘아빠스처럼 사브라가 되리라.’ 피 맺힌 긴 가시 끝에서 부르는 노래는 희망이고 기쁨이다. 익은 열매라는 가장 화려한 꽃 한송이를 피울 그날까지 거친 광야 길을 달려가면서 내내 부를 간절한 사랑의 노래. 아빠스처럼 거룩한 사브라가 되리라!

이지영